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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셈버 보이즈- 가족 선택의 불가능성

12월을 맞아 고아원생들 중 12월에 태어난 ‘디셈버 보이즈’는 특별한 휴가를 떠난다. 한적한 해변 마을로 떠난 휴가에서 그들은 여러 가지 일을 맞닥뜨리곤 한다. 고아들이라는 것을 빼곤, 평범한 네 소년들의 평범한 성장 영화인 것 같다. 그러나 아름다운 영상과 더불어 평범한 성장 영화 이상을 담는 것은, 마치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히, 공기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에 좋던 싫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가족의 의미를 돌이켜 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갈등 구조는 단 하나 밖에 없다. 입양 되느냐, 입양 되지 않느냐. 휴가로만 생각했던 해변 마을에서는 그들이 묶고 있는 홈스테이 가정만이 아니다. 아이가 없는 한 마을 부부는 그 넷 중 하나를 입양하기를 고아원과 관련된 신부님께 이야기하고, 그리고 그것을 ..

자아에 의한 자아성취는 가능한가?-웨이트리스

스스로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 절망적인 세 명의 웨이트리스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에 나머지 둘의 웨이트리스에게마저도 동정 받는 ‘파이굽기의 천재(genius of pie)' 제나는 폭력적이고 질투 많은 남편에게서 떠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그녀를 가로 막는 것은 그를 떠날 수 있는 능력, 구체적으로 돈이다. 큰 돈을 모으기 위해 큰 상금이 걸린 파이 굽기 대회에 나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그 경비를 다시 남편의 눈을 피해 모아야하는 처지다. 제 몸 하나 추스를 돈도 없는 제나에게 설상가상으로 증오하는 남편 얼의 아이가 들어선다. 술 취한 몇 주 전의 밤을 저주하는 제나. 남편에게서 멀어지려는 계획은 더욱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다가 새로 마을에 들어온 산부..

행복(2007)-행복은 현재형인가, 미래형인가

행복이라는 영화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찾는 것인지, 혹은 행복 자체를 노래한 것인지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행복을 찾는 과정을 그린 것에 조금 더 가깝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마저도 행복을 찾았다고 볼 수 없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그 상태 그대로의 ‘현상’, 혹은 ‘상태’일수도 있고, 혹은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또 불나방처럼 좇는 ‘목적’일수 있다. 이 영화는 도대체 행복이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지만, 행복의 몇 가지 속성, 현재성과 미래성의 어긋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없었던 영수(황정민 분)는 그냥 그 ‘상태’를 즐기는 양아치다. 간경변으로 고생하다가 시골에 있는 요양원에서 새 삶을 시작해보려고 하지만..

원스(Once, 2007)-음악과 대화, 소통의 두가지 채널

외국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 중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영화 중의 하나인 원스는 매스컴에서도 이미 알려졌다시피 다른 나라에서는 2006년에 개봉된 작품이다. 처음에 한 자리수의 개봉관으로 시작했던 이 영화는 열 몇 개의 상영관을 확보하고 입소문을 탄 관객들에 힘입어 10만 관객을 훌쩍 넘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글렌 한사드(Guy役, 이하 남자, 혹은 그)과 마르케타 이글로바(Girl役, 이하 여자, 혹은 그녀)의 아름다운 음악, 하모니가 주목받는 동안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일각의 지적도 받았으나, 음악에 비해 스토리가 약해보이는 것일 뿐, 스토리도 그다지 부실하지는 않다. 이 영화는 가장 주된 주제로 바로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소통 자체를 시도하기 위한 노력, 소통, 그리고 소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감정의 조작 가능성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의 (제목 맞나?)는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 젊은 남자가 그 이유를 곰곰이 사유하면서 깊이 있는 사랑을 추구해보기 위한 노력들을 그린 책이다. 물론 결국 이 남자는 그 여자와 헤어지고 다른 사랑을 만나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과연 운명인가, 아님 후천적인가. 혹은 좀 더 거대하게 이야기하자면, 사랑은 운명인가, 우연인가, 혹은 노력인가. 이러한 죽을 것 같은 궁금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사가 있어서 들여다 보았다.(기사의 길이는 곰곰이 들여다볼 정도로 길지 않았다.) 얼마 전, 인터넷 상에서 일본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 후각기능의 일부를 제거함으로써 고양이도 두려워하지 않는 쥐가 탄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색계, 죽이기 위한 공간에 대하여.

탕웨이라는 새로운 히로인의 탄생. 양조위의 여전한 연기력. 2시간 4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마무리하는 이안 감독의 혀를 내두르는 스토리텔링과 영상미. 이것은 영화 가 개봉 당시에 받았던 찬사들이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의 가장 큰 재미는 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주인공간의 밀고 당기기가 주는 긴장감이며, 또한 이 긴장감은 죽음과 섹스의 이면적이고도 동일한 모습의 변주로 이루어진다.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 왕차이즈(탕웨이)와 이대장(양조위)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곳은 공간이다.(이하 왕차이즈-왕, 이대장-이) '이'의 공간을 서서히 잠식하여 결국 그를 죽이려는 '왕'과 그 일당. 그리고 자신의 공간을 뺏기지 않으려 경호원까지 의심하며 살아가는 '이'는 만나는 와중 직접적인 속..

코끼리-김재영

작가는 사회적인 부조리와 약자의 삶에 대한 반성을 소설집에 담고자 했었나보다. 외국인 노동자부터,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러시아 아가씨, 비정규직 근로자까지. 각 소설들의 포커스는 집요하게 이른바 '사회적 약자'에 맞추어져 있으며, 심지어는 오랜만에 만났던, 한 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대학 선후배가 만나서 주류에 편승해 버린 자와 남아서 지키는 자, 혹은 남겨진 자의 대립을 직접적인 대화로 풀어나가기까지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란 것이 워낙 직접적이고 강렬하기 때문에, 아무리 묘사와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간다고 해도 거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몇몇 소설은 한 편의 논설문을 보는 것 같았으므로, 조금은 거북했다. 어쩌면, 그들에 대한 내 무관심이 돌이켜져서 거북스러워졌을지도 모르는 일.

[아무거나]/책 2007.09.30

생물학-로버트 A. 월리스 著 이광웅 譯(★★★★)

두꺼운 검은 색 하드커버에 압도적인 호랑이 사진!! 학생대백과의 동물편, 식물편, 인체편은 잊어라!! 한 권 두면 뽀대나고, 열어보면 뿌듯하고, 정독할 때마다 새로운 내용을 새롭게 알게 되는 숨 막히는 양! 역시 생물학은 그 종(種)의 다양성만큼 다채로운 것! 아직도 그 호랑이 그림이 노려보는 두꺼운 이 책을 발견하면 무작정 한 번 펼쳐보게 된다. 봤던 내용이 나오면 즐겁고, 안봤던 내용이 나오면 신기하고. 하지만, 난 끝까지 정독해본 적이 없다.

[아무거나]/책 2007.09.30

풍금이 있던 자리-신경숙(★★★☆)

말하지만, 내 리뷰는 거의 나의 주관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서, 그것이 객관을 분명 몇 퍼센트인가 가지고 있더라도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 소설이 단편소설 모음집임에도 불구하고-마지막 한 편은 중편 정도의 길이의-글이 쉽사리 읽히지 않아 적잖이 당혹해했었다. 평소 이미지나 감정의 진득한 묘사에는 자신이 없던 터에, 그런 글을, 더욱이 문장의 호흡이 긴 소설을 가슴의 갑갑함 없이 읽어낼 수 없었다. 원래 그런 갑갑함은 소설의 이해를 바탕으로, 소설의 감정과 동화되어 느껴야 하는 것인데, 나는 소설을 읽는 과정 중에 느끼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내 역량부족이므로. 일단은 별 세 개. 그리고 반.

[아무거나]/책 2007.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