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제목 맞나?)는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 젊은 남자가 그 이유를 곰곰이 사유하면서 깊이 있는 사랑을 추구해보기 위한 노력들을 그린 책이다. 물론 결국 이 남자는 그 여자와 헤어지고 다른 사랑을 만나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과연 운명인가, 아님 후천적인가. 혹은 좀 더 거대하게 이야기하자면, 사랑은 운명인가, 우연인가, 혹은 노력인가. 이러한 죽을 것 같은 궁금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사가 있어서 들여다 보았다.(기사의 길이는 곰곰이 들여다볼 정도로 길지 않았다.)
얼마 전, 인터넷 상에서 일본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 후각기능의 일부를 제거함으로써 고양이도 두려워하지 않는 쥐가 탄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 쥐가 실제로 고양이 주변에 알짱대는 재미있는 동영상도 함께 올라와 있다.(보고 싶으면 인터넷에서 ‘겁을 상실한 쥐’ 정도로 검색하면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자(07.12.14) 한겨레신문에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공포감’을 제거한 쥐가 태어났고, 실제로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에 비추어, ‘공포감은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는 논지의 기사를 내었다. 아무리 보아도 사진은 지난번에 보았던 후각기능 제거 쥐와 동일 쥐인 것 같은데, 뭐 기사 내용은 지난 번과는 달라-후각기능의 물리적 제거와 유전자 조작의 차이-뭐 곧이곧대로 읽기로 했다.(그러나 오늘자 한겨레신문 인터넷 홈피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자 신문지면에 있었던 다른 기사는 그대로 다 있었는데, 유독 그것만.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유전자조작이 사실은 그 후각세포 관련한 것이라서, 그 기사가 그 기사일 가능성)
그것의 사실 유무는, 혹은 그것에 대한 몇가지의 추가적인 근거는 내게 있어서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다. 혹은 내일 자 지면에 한겨레에서는 ‘바로 잡습니다’ 코너를 통해 그 쥐 실험 연구 기사의 오류를 인정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 기사와 앞의 후각제거 기사가 사실이며, 몇 가지 확인할 사항을 밝히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고양이에 대한 공포감만을 제거하였는가, 아니면 공포감 자체를 제거하였는가?
2. 만약 고양이에 대해서만 이던지, 혹은 공포감 자체이던지 간에 그 뒤에 경험적으로 고양이를 두려워 할만한 ‘사건’이나 스트레스, 혹은 고양이 외에 불특정 개체(이를테면 인간)에 대한 스트레스를 제공해 보았는가?
이다. 내가 굳이 이러한 사항을 확인하려는 이유는 그 사항들이 검증이 되어야만
1. 공포는 물리적인 요소에서 비롯되는가?
2. 공포의 감정은 선험적인가, 후천적인가?
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항을 근거로 표를 만들어보았다. 다음 표는 각각의 실험이 다음의 어떤 것을 했는지에 대한 결과이다.
주장1. 고양이에 대한 공포를 제거 |
주장.2 공포 자체를 제거 | |
필요검증1. 고양이 스트레스를 주었을 경우 |
1. 공포심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
2.공포심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
필요검증2. 고양이 외의 스트레스를 주었을 경우 |
3.공포감을 느낀다→고양이에 대해서만 스트레스 제거 성공, 공포감을 느끼지 않는다→공포감 자체를 제거한 것으로 실험실패 |
4. 공포심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
중요한 부분은 주장1에 대한 필요검증2의 부분이다. 후각이든 유전자이든 고양이에 대한 공포감만을 제거한 것처럼 기사는 묘사하였는데, 그 기사가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려면 필요검증2에 대한 결과를 같이 제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고양이에 대한 공포만을 제공하였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는 공포가 상황이 아닌, 개체에 내재하고 있는 가 아닌가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여 고양이에 대한 공포만을 제거하였다고 검증되었을 때만 다음 논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후각세포 조작 |
유전자 조작 | |
특정한 개체에 공포(감정)는 선험적인가? 혹은 후천적인가? |
1. 고양이를 이미 접촉하고 공포를 체험한 쥐의 경우에 공포가 사라졌다면? 공포는 선험적 2. 고양이를 접촉하지 않은 쥐가 처음으로 고양이를 접하고 공포심을 갖지 않은 경우→ (1) 고양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어서 공포가 생기는 경우: 개체에 대한 공포심은 후각세포와 관련 없음 (2) 고양이에 대한 스트레스에도 공포심이 없는 경우, 그리고 다른 개체에는 공포심이 있는 경우 : 특정개체에 반응하는 후각세포가 따로 있음 |
(가정) 이미 고양이를 경험한 쥐는 세포의 개체가 많아서 완벽한 조작이 불가능하므로 유전자 조작은 배아상태이서 이루어지고 따라서 고양이에 대한 경험이 없음. 3. 후천적이고 지속적인 고양이 스트레스에 반응한다면 공포심은 후천적이고, 유전되지 않는다 공포는 개체가 아닌 상황에 있다. 4. 후천적이고 지속적인 고양이 스트레스에도 고양이에 대한공포가 없다면 고양이에 대한 공포심은 유전자적인 정보이다. 그리고 다른 개체의 스트레스에 반응한다면 공포심은 상황이 아닌 개체에 있다 |
후각 세포의 조작이든 유전자 조작이든, 이 나에게 있어 이 실험들의 쟁점은 공포라는 감정이 ‘선험적’인가 하는 것이다. 혹은 공포라는 것이 감정이기 때문에 생각해볼 수 있는 다른 감정들, 사랑 따위, 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1번의 경우는 공포는 즉자적이고, 비경험적이다.(대뇌에 기억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므로)2-(1)은 공포가 후천적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다양한 경로로 유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쥐의 경우)연구결과가 2-(2)라면 거의 SF 소설을 방불케 하는 것으로서 후각세포의 무한한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주어 향수 산업 등 수많은 후각 관련 사업의 부흥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된다.(설마 이런 결과는 아니겠지하고 생각하고 있다) 3번의 경우에는 감정은 선험적이고 또 후천적이라는 것으로, 경험적인 사실들이 쌓이고 쌓여서 후대에 전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경험적으로 선대에서 전해 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선천적이지만, 후천적으로도 유전자적으로 정보를 축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일반인도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하지만 축적의 장소였던 DNA가 제거되었거나 변형되었는데, 다시 축적이 된다는 것은 그 DNA로 특정개체에 대한 공포심을 제거하였다는 것은 좀 더 검증이 필요한 문제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 제일 당황스럽고 최악의 상황은 4번이다. 이것은 특정 개체에 대한 감정이 선험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러 가지를 시사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와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는, 혹은 그러한 성향은 이미 내 몸속에 마련된 것으로서, 내가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을 로맨틱한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현재 깨가 쏟아지는 커플은 위 실험의 결과가 4번일 경우 더욱 더 아름답고 깊은 사랑의 근거로 작용해 좀 더 심도 깊은 염장을 지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운명이라며 떠들고 다니는 크리스마스의 수많은 커플들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자신의 운명과 나에 대한 호감이나 사랑의 유전자의 쎄팅이 되어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같은 부류의, 선험적으로, 혹은 유전적으로 비슷한 부류의 사람과 쏘주를 들이키게 되는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종강이요, 크리스마스다. 때맞춰 운명의 여인이 당신을 사랑하는 자신의 유전자를 들이미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들이 운명이라며 지저귀는 수많은 커플들은 그 흥망성쇠를 늘 달리한다. 유전자의 영향이라면, 그렇게 좋아하다가 헤어질 일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딘가에 착각의 유전자는 또 존재하지 않겠는가?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어서 빨리 신문사나 언론사들의 과학부는 위에 내가 나열한 다양한 의미들 중에서 이 실험의 진정한 의미를 낱낱이 찾아 공개하여 나 같이 뻘 고민을 하기 보다는 무언가 실천적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 방향이 쌍방향이든, 일방이든 나는, 혹은 수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고민하고 있으니까..
도대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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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확인해 본 결과, 유전자 조작을 통해 후각세포를 변형시킨 것으로 최종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