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영화

The Bucket List-일탈을 통해 들여다보는 일상과 일생의 소중함

뤼튼존 2008. 7. 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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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죽을 날을 알고 싶은가 라는 설문에 96%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답을 내놓았다고 한다.(물론 영화에서) 그러나 나는 이 영화 속의 카터처럼 내가 죽기까지 남은 시간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4%의 독특한 인간 속에 끼어들고 싶어서 안달이 났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남은 시간이 주어짐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최대치를 이룰 수도 있고, 또한 죽기 직전에 반드시 해보고 싶었던,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일들에 대한 결단을 감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자신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카터와, 자신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에드워드는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의 양극단을 묘사한다.(카터 쪽이 조금 더 일반적인 삶을 대변하는 것 같기는 하다)그러나 양극단의 인생에서 전혀 수렴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생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한 병실에서 조우한다. 돈으로 대변되는 능력의 결핍과 과잉, 사람으로 대변되는 애정의 결핍과 충만함은 죽음을 앞둔 두 늙은이들에게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던 것 같다. 그 힘은 자신들에게 주어졌다고 의사가 말하는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에 대한 초조함까지 더해지면서 둘만의 여행으로 이어진다.


더운 날 스포일러 지수가 식중독 지수처럼 올라가다간 많은 이들이 짜증을 일으킬 것 같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자기 자신의 Bucket List, 즉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 말이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비단 영화에 나오는 이 두 노인들 뿐만은 아닐 듯하다. 나 역시 많은 고민을 하면서 내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는데,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더라는 것이다. ‘죽기 전에 마지막’이라는 수사는 고민의 정도를 거창하게 부풀려 놓는다. 깜냥에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바람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고, 또 기준을 낮추자니 여기저기서 ‘그 정도라면 이것도’ 라고 손을 든다. 결국 리스트는 특별한 것이 아닌 잡다한 것들이 넘쳐난다.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게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 그 리스트는 찢어버리는 편이 낫다.


그런 신중함 때문에 대체로 이러한 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면 그동안 살아온 삶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해볼 수 있었지만 참았던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부자들이 결국은 그 많은 돈을 기부하고 죽는다든가,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온 소시민이 잠시 자신만을 위한 조촐한 여행을 떠난다든가 하는 일들 말이다. 그러니 궁극적인 일탈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리스트를 공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정리에 동참하는 것이다. 마치 카터와 에드워드처럼.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다면, 애벌레 탑이 이야기하는 허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애벌레 탑은 사실 인생에 있어서 그다지 큰 효용이 없는 그저 ‘좋아 보이는’ 일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애벌레들은 그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한다면 그것의 무의미함을 깨닫지 못한다. 카터는 인생의 마지막에 그 애벌레 탑을 오르려 하고 에드워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 전부터 늘 그 꼭대기에서 허무를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그 탑에서 스스로 내려온다.


나도 어떤 정상에 오르기 위해 어떤 일상을 버리고 있는지, 버리려하는지, 그리고 죽기 전에 과연 내가 찾아 떠날 일탈과 결국 되돌아올 일상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단, 내가 죽을 때를 대충이라도 알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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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라 그런지, 영 허접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