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뤼튼존 2007. 9. 24. 20:51

리뷰 아닌, 기적에 대한 짧은 단상(2004.8.19)
 
냉정해보이는 여주인공 아오이가 자신의 열정을 드러내지 않고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기적을 가장하는 일이었다. 꿈에 그리던 서른살 생일에 두오모성당에서의 약속. 그 간절한 소망이 만들어낸 만남에 아오이는 내심 두근거려하면서, 그 뒤에 일정을 고민하는 준세이에게 지나가다 우연히 보게된 거리의 한 음악회로 안내한다. 거기엔 둘이 대학에 같이 다닐 때 캠퍼스의 콘크리트 계단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학생이 연주자가 되어있었다. 그 학생이 연습하던 항상 똑같은 그 음악에 손을 잡고 첫키스를 했던 그 기억. 다시 한 번 휩쓸려 자신의 열정을 내비치고 싶었던 아오이. 마침 기적처럼 그 음악은 다시 흘러나오고, 만들어진 기적인줄은 꿈에도 모르고 감격스러워하는 준세이는 금방 자신의 마음의 열정을 터뜨리고만다. 음악에 몸을 실어 키스를 하고, 둘은 예전처럼 뜨거운 밤을 보낸다. 그러나 아오이는 어디선가 예전에 그 학생을 이미 만났고, 그곳에서 그 시간에 그 곡의 연주를 부탁했었던 것이다. 서른살의 생일에 반드시 준세이가 나타나줄 것을 기도하면서.

그러나 아오이는 그 다음날 다시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밀라노로 떠난다고 한다. 실망한 준세이는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푸념하고, 아오이는 그래도 좋았다며 아무렇지 않게 밀라노로 떠난다. 아오이가 떠난 후 준세이는 식탁위에 어제의 그 악단의 팜플렛을 보게 되고, 다시 첼로 연주자를 만나 아오이가 이미 구면이라는 것과 벌써 예전부터 그 음악을 부탁했었다는 것을 듣게된다. 자신이 만들어낸 기적에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준세이와 사랑을 확인했지만, 아오이는 그 이벤트의 끝맺음을 자신없어 했음이 분명했다.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고, 단지 갑작스레 그 상황에 이끌려 그랬을 뿐이라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돌아서고 싶어했음이 틀림없다. 다시 사랑하고 싶은 마음과 갈등했음도 분명했다.

하지만 만들어진 기적에 실망했을 법도 한 준세이는 오히려 그 만들어진 기적에서 아오이의 마음을 읽는다. 급행열차를 타고 아오이보다 15분 먼저 도착한 준세이는인파 속에서 아오이를 기다리고, 마주치게 된다. 준세이가 미소를 지으며 아오이에게로 다가가는 수간, 준세이가 아오이에게 선물한 기적의 순간에 영화는 끝나고, 둘이 함께 만들어갈 기적이 시작될 것이다.

기적은 서로가 냉정함을 잃지 않고 거리를 유지해야하는 상황에서, 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열정을 어쩔 수 없이 꺼내는 것처럼 가장해주는 수단이다. 많은 기적들이 스쳐지나가고, 가끔은 내 냉정도 열정으로 바꿔줄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 좋아하는 그 사람이 냉정을 버리고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로서의 기적이 오기를 바란다. 간절한 마음은 기적을 만들고, 기적은 기적을 만든다.